Final project(Portrait, and their history)

시대별로 다양한 초상화들은 살펴보며 그 시대 초상화의 특징을 평가해보고 더 나아가 역사적인 사실과도 맞물려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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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초상화는 portrait of a Nobleman with Dueling Gauntlet, 사진은 서울신문 출처    한 남성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16세기의 이탈리아 귀족의 초상화 앞에서 기념 사진을 남긴 모습

<번외> 초상화는 portrait of a Nobleman with Dueling Gauntlet, 사진은 서울신문 출처 한 남성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16세기의 이탈리아 귀족의 초상화 앞에서 기념 사진을 남긴 모습

앤드류 와이어스, 헬가 시리즈, 1971-1985    동네 주변의풍경과 사람들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리던 앤드류 와이어스.  한 여인(헬가)의 모습을 15년동안이나 240여점을 그려냈다.  앤드류 와이어스와 헬가는 모두 각자의 가정이 있는 남녀였다. 앤드류 와이어스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헬가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믿지 못할 만큼의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 저 여인은 내게 온 나만의 예술적 기회였다.”    무려 15년이라는 기간을 철저하게 비공개로 모델로 삼아 240여점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점이 우선 놀랍다. 이 배경을 알고나니 앞의 초상화의 여인(헬가) 또한 신비하게 느껴진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굉장히 부드러우면서도 사진처럼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서 나타내었다. 하지만 사진과는 다르게 풍부한 감정 또한 전달되는 것이 앤드류 와이어스 작품의 매력인 것 같다.

앤드류 와이어스, 헬가 시리즈, 1971-1985 동네 주변의풍경과 사람들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리던 앤드류 와이어스. 한 여인(헬가)의 모습을 15년동안이나 240여점을 그려냈다. 앤드류 와이어스와 헬가는 모두 각자의 가정이 있는 남녀였다. 앤드류 와이어스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헬가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믿지 못할 만큼의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 저 여인은 내게 온 나만의 예술적 기회였다.” 무려 15년이라는 기간을 철저하게 비공개로 모델로 삼아 240여점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점이 우선 놀랍다. 이 배경을 알고나니 앞의 초상화의 여인(헬가) 또한 신비하게 느껴진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굉장히 부드러우면서도 사진처럼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서 나타내었다. 하지만 사진과는 다르게 풍부한 감정 또한 전달되는 것이 앤드류 와이어스 작품의 매력인 것 같다.

<앞과 같은 설명>사진작가 Robert Capa, 피규어로 제작한 중국소년병사, 1937  피규어로 하나하나 점묘하듯이 배치를 한 후에 사진으로 만들어낸 초상화이다. 피규어도 모두 군인의 모습이라 전쟁의 아픔을 더욱 잘 전달해주기도 한다.    20세기 초 빈번한 전쟁의 슬픔에 대한 감정을 잘 전달해 주는 것 같다. 어찌보면 단순한 소년병사의 모습이라 생각할수도 있지만 그 입자 하나하나가 총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라 생각하면 더욱 잔인한 상황이 느껴진다.

<앞과 같은 설명>사진작가 Robert Capa, 피규어로 제작한 중국소년병사, 1937 피규어로 하나하나 점묘하듯이 배치를 한 후에 사진으로 만들어낸 초상화이다. 피규어도 모두 군인의 모습이라 전쟁의 아픔을 더욱 잘 전달해주기도 한다. 20세기 초 빈번한 전쟁의 슬픔에 대한 감정을 잘 전달해 주는 것 같다. 어찌보면 단순한 소년병사의 모습이라 생각할수도 있지만 그 입자 하나하나가 총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라 생각하면 더욱 잔인한 상황이 느껴진다.

사진작가 Robert Capa, 피규어로 제작한 중국소년병사, 1937  피규어로 하나하나 점묘하듯이 배치를 한 후에 사진으로 만들어낸 초상화이다. 피규어도 모두 군인의 모습이라 전쟁의 아픔을 더욱 잘 전달해주기도 한다.    20세기 초 빈번한 전쟁의 슬픔에 대한 감정을 잘 전달해 주는 것 같다. 어찌보면 단순한 소년병사의 모습이라 생각할수도 있지만 그 입자 하나하나가 총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라 생각하면 더욱 잔인한 상황이 느껴진다.

사진작가 Robert Capa, 피규어로 제작한 중국소년병사, 1937 피규어로 하나하나 점묘하듯이 배치를 한 후에 사진으로 만들어낸 초상화이다. 피규어도 모두 군인의 모습이라 전쟁의 아픔을 더욱 잘 전달해주기도 한다. 20세기 초 빈번한 전쟁의 슬픔에 대한 감정을 잘 전달해 주는 것 같다. 어찌보면 단순한 소년병사의 모습이라 생각할수도 있지만 그 입자 하나하나가 총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라 생각하면 더욱 잔인한 상황이 느껴진다.

피카소, 마리 테레즈 발테르의 초상, 1937    44세인 피카소가 만난 17세의 연인. 화려하고 감각적인 색채, 부드러우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곡선 등으로 신비하고도 초월적인 ‘여인의 미(美)’를 표현하였다.  현대 미술로 넘어오면서 피카소의 작품들은 난해한 모습을 많이 갖고 있다. 이는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탄생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피카소가 이 그림을 그리기 직전인 1935년엔 첫 번째 부인인 올가와의 이혼 소송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면서 이런 내적 갈등과 불안감을 더욱 심해지는데 연인을 다시 만나며 따뜻한 분위기의 초상화를 나타내었던 것 같다. 그림을 통해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취하고 불안한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동안 피카소의 작품은 ‘신기하다’라는 감정만 느낄 수 있었지만 그 배경 속의 작품을 바라보니 따뜻함과 애틋함도 느껴진다.

피카소, 마리 테레즈 발테르의 초상, 1937 44세인 피카소가 만난 17세의 연인. 화려하고 감각적인 색채, 부드러우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곡선 등으로 신비하고도 초월적인 ‘여인의 미(美)’를 표현하였다. 현대 미술로 넘어오면서 피카소의 작품들은 난해한 모습을 많이 갖고 있다. 이는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탄생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피카소가 이 그림을 그리기 직전인 1935년엔 첫 번째 부인인 올가와의 이혼 소송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면서 이런 내적 갈등과 불안감을 더욱 심해지는데 연인을 다시 만나며 따뜻한 분위기의 초상화를 나타내었던 것 같다. 그림을 통해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취하고 불안한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동안 피카소의 작품은 ‘신기하다’라는 감정만 느낄 수 있었지만 그 배경 속의 작품을 바라보니 따뜻함과 애틋함도 느껴진다.

폴 세잔, 세잔 부인의 초상, 1885~1887    19세기 후반, 후기인상주의의 대표주자인 세잔이 그린 그의 부인의 모습. 세잔 부인의 여러 초상. 완벽에 가까운 타원의 형태를 취해 20세기의 새로운 미술 양식이 도래하고 있음을 예고  후기 인상주의 등의 내용은 객관적으로 평가된 내용이지만 앞의 초상화를 살펴보면 ‘단순’이라는 단어가 바로 떠오르는 것은 사실이다. 19세기 유럽은 여러 제국들의 번영과 몰락, 제국주의의 도래, 그리고 열강들의 등장으로 혼란스럽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역사적인 배경과는 반대로 세잔의 작품은 단순함을 나타내어 그 특징이 더욱 부각되는 것 같다. 얼굴의 형태가 세밀하지 않아서 과연 그의 부인을 보고 그린 것인지 머릿속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린 것인지 상상하게끔한다.     모습또한 여성성과 남성성을 모두 갖고 있는 듯하다. 이는 뒤로 묶은 듯한 머리가 그림에 제대로 표현되어있지 않아서 얼핏보면 짧은 머리의 사내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폴 세잔, 세잔 부인의 초상, 1885~1887 19세기 후반, 후기인상주의의 대표주자인 세잔이 그린 그의 부인의 모습. 세잔 부인의 여러 초상. 완벽에 가까운 타원의 형태를 취해 20세기의 새로운 미술 양식이 도래하고 있음을 예고 후기 인상주의 등의 내용은 객관적으로 평가된 내용이지만 앞의 초상화를 살펴보면 ‘단순’이라는 단어가 바로 떠오르는 것은 사실이다. 19세기 유럽은 여러 제국들의 번영과 몰락, 제국주의의 도래, 그리고 열강들의 등장으로 혼란스럽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역사적인 배경과는 반대로 세잔의 작품은 단순함을 나타내어 그 특징이 더욱 부각되는 것 같다. 얼굴의 형태가 세밀하지 않아서 과연 그의 부인을 보고 그린 것인지 머릿속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린 것인지 상상하게끔한다. 모습또한 여성성과 남성성을 모두 갖고 있는 듯하다. 이는 뒤로 묶은 듯한 머리가 그림에 제대로 표현되어있지 않아서 얼핏보면 짧은 머리의 사내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존 프레드릭 루이스, 콘스탄티노플의 하렘 생활, 1857    북아프리카와 이집트를 중심으로 중동지방을 묘사한 오리엔탈리스트의 루이스 작품  역사적인 큰 사건들과는 별개로 여행을 다니며 그들의 일상을 그림으로 옮겼다.   당시 콘스탄티노플 하렘의 주인으로 보이는 침대위의 여인은 마음대로 야외로 나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한다. 옆에 서있는 여인은 가족인지 하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옷차림으로 보아 가족이었을 확률이 크다고 생각한다.    거울을 통해서 같은 얼굴을 다른방향으로 두번이나 그렸는데 거울 오른쪽 위에 사람의 하체와 비슷한 상이 있다. 거울이 약간 기울어 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는 아마 화가 자신을 그려넣은 것이라 생각한다.    오랜기간동안 이집트에 머물며 일상을 그린 오리엔탈리스트 존 프레드릭 루이스는 그들의 일상을 통해서 더욱 자유로운 기분을 느꼈을 것 같다.

존 프레드릭 루이스, 콘스탄티노플의 하렘 생활, 1857 북아프리카와 이집트를 중심으로 중동지방을 묘사한 오리엔탈리스트의 루이스 작품 역사적인 큰 사건들과는 별개로 여행을 다니며 그들의 일상을 그림으로 옮겼다. 당시 콘스탄티노플 하렘의 주인으로 보이는 침대위의 여인은 마음대로 야외로 나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한다. 옆에 서있는 여인은 가족인지 하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옷차림으로 보아 가족이었을 확률이 크다고 생각한다. 거울을 통해서 같은 얼굴을 다른방향으로 두번이나 그렸는데 거울 오른쪽 위에 사람의 하체와 비슷한 상이 있다. 거울이 약간 기울어 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는 아마 화가 자신을 그려넣은 것이라 생각한다. 오랜기간동안 이집트에 머물며 일상을 그린 오리엔탈리스트 존 프레드릭 루이스는 그들의 일상을 통해서 더욱 자유로운 기분을 느꼈을 것 같다.

윤두서의 자화상, 18세기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자화상으로 꼽힌다. 국보로도 지정되어 있다.     이목구비가 또렸하고 잘생긴 한국인의 얼굴을 정밀하고도 생동감 넘치게 그렸다.윤두서의 자화상은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그 기법이나 가치를 논한다기 보다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동양화에서 그동안 얼굴을 자세히 묘사하는 초상화는 찾기 힘들었는데 수염도 하나하나 표현할 정도로 정밀함을 보여주었다.  22세에 부인이 사망하였고 셋째형은 당쟁에 휘말려 귀양지에서 사망하고 큰형과 함께 모함을 받아 고생을 하였다. 이런 사건들로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는데, 시,서,화에 두루 능했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화상을 그리며 자신의 모습을 계속 관찰하고 그동안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목도 없이 안면만 그려져 있어서 섬뜩한 느낌도 주긴 하지만 표정과 전체적인 모습에서 당당함을 느낄 수 있다.

윤두서의 자화상, 18세기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자화상으로 꼽힌다. 국보로도 지정되어 있다. 이목구비가 또렸하고 잘생긴 한국인의 얼굴을 정밀하고도 생동감 넘치게 그렸다.윤두서의 자화상은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그 기법이나 가치를 논한다기 보다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동양화에서 그동안 얼굴을 자세히 묘사하는 초상화는 찾기 힘들었는데 수염도 하나하나 표현할 정도로 정밀함을 보여주었다. 22세에 부인이 사망하였고 셋째형은 당쟁에 휘말려 귀양지에서 사망하고 큰형과 함께 모함을 받아 고생을 하였다. 이런 사건들로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는데, 시,서,화에 두루 능했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화상을 그리며 자신의 모습을 계속 관찰하고 그동안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목도 없이 안면만 그려져 있어서 섬뜩한 느낌도 주긴 하지만 표정과 전체적인 모습에서 당당함을 느낄 수 있다.

길버트 스튜어트,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 1796  한때 점잖은 대지주이기도 했던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이 초상화에서 제왕같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 그림은 미국의 달러화에 그려져 오늘날까지도 유통되고 있다.  우선 길버트 스튜어트의 개인적인 역사를 살펴보면, 1775년 런던으로 가서 미국의 역사화가 벤저민 웨스트의 작업실에서 견습 생활을 했다. 하지만 웨스트의 양식보다는 토머스 게인즈버러와 조슈아 레이놀즈 같은 영국 초상화가들의 기법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세계 최초로 국민들에 의해 국가원수가 된 워싱턴은 초상화에서 제왕과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튜어트는 배경과 자세를 통해서 국민들에 의해 최고의 위치에까지 올라서게 된 조지 워싱턴을 더욱 근엄하게 보이려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길버트 스튜어트,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 1796 한때 점잖은 대지주이기도 했던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이 초상화에서 제왕같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 그림은 미국의 달러화에 그려져 오늘날까지도 유통되고 있다. 우선 길버트 스튜어트의 개인적인 역사를 살펴보면, 1775년 런던으로 가서 미국의 역사화가 벤저민 웨스트의 작업실에서 견습 생활을 했다. 하지만 웨스트의 양식보다는 토머스 게인즈버러와 조슈아 레이놀즈 같은 영국 초상화가들의 기법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세계 최초로 국민들에 의해 국가원수가 된 워싱턴은 초상화에서 제왕과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튜어트는 배경과 자세를 통해서 국민들에 의해 최고의 위치에까지 올라서게 된 조지 워싱턴을 더욱 근엄하게 보이려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더비의 조셉 라이트, 리차드 아크라이트경의 초상, 1789~1790    18세기 후반, 산업혁명과 함께 초상화 시장에는 귀족 못지 않은 유력한 고객층이 새롭게 등장  비슷한 시기의 초상화이지만 작품12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무엇보다 초상화를 위한 배경과 머리 스타일, 옷차림 등에 굉장한 시간을 투자했다고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정통적인 초상화와 같이 표정이나 옷차림 등을 세밀하게 표현하여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산업혁명 등으로 신 귀족층처럼 많은 사람들이 부를 쌓아 가며 그 동안 귀족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초상화를 그리고 싶어 했을 것이다.

더비의 조셉 라이트, 리차드 아크라이트경의 초상, 1789~1790 18세기 후반, 산업혁명과 함께 초상화 시장에는 귀족 못지 않은 유력한 고객층이 새롭게 등장 비슷한 시기의 초상화이지만 작품12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무엇보다 초상화를 위한 배경과 머리 스타일, 옷차림 등에 굉장한 시간을 투자했다고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정통적인 초상화와 같이 표정이나 옷차림 등을 세밀하게 표현하여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산업혁명 등으로 신 귀족층처럼 많은 사람들이 부를 쌓아 가며 그 동안 귀족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초상화를 그리고 싶어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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