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무한한 창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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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 마그리트 <꿈의 열쇠> -1930년 제작 //// 이 작품은 마그리트의 작품답게 각 이미지와 단어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미지의 배반>을 떠올리게 한다. 이 그림 역시 본질과 언어의 불일치, 언어의 불완전성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별 사물들이 언어와 맺는 관계는 절대적이지 않고 임의적인 것이다. 마그리트는 회화의 소쉬르다. 그런데 작품이름이 <꿈의 열쇠> 라는 점이 독특하다. 사물과 언어의 불일치성을 다루고 있는 이 그림에 왜 이러한 제목이 붙었을까?바로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임의성, 불완전성, 모순 등이 꿈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꿈은 결코 논리적이지 않다. 오히려 임의적이고 뒤죽박죽이며 부조리하다. 무의식의 세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꿈은 이성, 현실, 논리 등이 가질 수 없는 창조적 에너지를 가진다. 그래서 초현실주의 등을 거치며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 르네 마그리트 <꿈의 열쇠> -1930년 제작 //// 이 작품은 마그리트의 작품답게 각 이미지와 단어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미지의 배반>을 떠올리게 한다. 이 그림 역시 본질과 언어의 불일치, 언어의 불완전성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별 사물들이 언어와 맺는 관계는 절대적이지 않고 임의적인 것이다. 마그리트는 회화의 소쉬르다. 그런데 작품이름이 <꿈의 열쇠> 라는 점이 독특하다. 사물과 언어의 불일치성을 다루고 있는 이 그림에 왜 이러한 제목이 붙었을까?바로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임의성, 불완전성, 모순 등이 꿈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꿈은 결코 논리적이지 않다. 오히려 임의적이고 뒤죽박죽이며 부조리하다. 무의식의 세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꿈은 이성, 현실, 논리 등이 가질 수 없는 창조적 에너지를 가진다. 그래서 초현실주의 등을 거치며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 박항률 <낮 꿈> -2010년 제작 //// 한국적인 몽환의 느낌이 나는 작품이다. 낮 꿈이라는 제목답게 한가로운 오후에 나무와 꽃, 그리고 새 사이에서 잠든 소년이 보인다. 어쩌면 그 사이에서 잠든 것이 아니라 소년이 꾸는 꿈이 표현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이 그림은 그 자체로 '낮 꿈' 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꿈속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잘 안가는 듯한 몽환적 색채와 분위기 덕분이다. 보통 동양에서 꿈은 현실의 연장선이자 현실의 반영이다. 많은 설화에서 꿈은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장자는 나비 꿈을 꾸고나서는 장주가 나비인지 나비가 장주인지, 하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꿈을 무의식의 세계로 생각하는 서양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은 있지만 동양에서의 꿈은 좀 더 물아일체적 성격이 강하다. 꿈은 나의 일부분이요 나 또한 꿈의 일부분이니 그것이 갖는 창조력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박항률 <낮 꿈> -2010년 제작 //// 한국적인 몽환의 느낌이 나는 작품이다. 낮 꿈이라는 제목답게 한가로운 오후에 나무와 꽃, 그리고 새 사이에서 잠든 소년이 보인다. 어쩌면 그 사이에서 잠든 것이 아니라 소년이 꾸는 꿈이 표현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이 그림은 그 자체로 '낮 꿈' 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꿈속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잘 안가는 듯한 몽환적 색채와 분위기 덕분이다. 보통 동양에서 꿈은 현실의 연장선이자 현실의 반영이다. 많은 설화에서 꿈은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장자는 나비 꿈을 꾸고나서는 장주가 나비인지 나비가 장주인지, 하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꿈을 무의식의 세계로 생각하는 서양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은 있지만 동양에서의 꿈은 좀 더 물아일체적 성격이 강하다. 꿈은 나의 일부분이요 나 또한 꿈의 일부분이니 그것이 갖는 창조력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라파엘로 <기사의 꿈> -1504~1505년 제작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가인 라파엘로의 작품이다. <스키피오의 꿈>이라고도 알려져있는 작품이다. 가운데에는 잠든 기사가 보이고 왼쪽의 소박한 옷을 입고 있는 여자는 칼과 책을 그에게 권하고 있으며 오른쪽의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여자는 그에게 은매화 가지를 내밀고 있다. 왼쪽의 여자는 학문과 무술을, 오른쪽의 여자는 쾌락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대비를 통해 올바른 길과 그릇된 길에 대한 기사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내적갈등이 그가 잠들었을 때 꿈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꿈이 무의식의 반영이자 사람의 가장 솔직한 부분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꿈이기 때문에 사랑, 쾌락과 같은 부분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꿈은 이성의 상태가 보여줄 수 없는 부분들을 보여준다. 꿈의 창조력의 한 부분이다.

//// 라파엘로 <기사의 꿈> -1504~1505년 제작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가인 라파엘로의 작품이다. <스키피오의 꿈>이라고도 알려져있는 작품이다. 가운데에는 잠든 기사가 보이고 왼쪽의 소박한 옷을 입고 있는 여자는 칼과 책을 그에게 권하고 있으며 오른쪽의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여자는 그에게 은매화 가지를 내밀고 있다. 왼쪽의 여자는 학문과 무술을, 오른쪽의 여자는 쾌락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대비를 통해 올바른 길과 그릇된 길에 대한 기사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내적갈등이 그가 잠들었을 때 꿈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꿈이 무의식의 반영이자 사람의 가장 솔직한 부분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꿈이기 때문에 사랑, 쾌락과 같은 부분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꿈은 이성의 상태가 보여줄 수 없는 부분들을 보여준다. 꿈의 창조력의 한 부분이다.

//// 앵그르 <오시안의 꿈> -19세기 경 제작, 신고전주의 //// 북구 전설 속의 영웅 오시안의 노래를 주제로 한 이 그림은 나폴레옹의 침실 천장화로서 주문제작되었다. 정의로운 용사 핀갈의 아들인 오시안은 결혼을 하면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하는 돼지처럼 못생긴 추녀와 결혼했다. 그녀는 정말로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고, 믿음과 용기에 대한 대가로 그는 젊음의 나라인 티르 나 노그를 300년 동안 다스린다. 어느 날 고향에 가보고 싶던 그는 절대로 땅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아내의 경고를 듣고 길을 떠난다. 하지만 그가 말에서 미끄러져 떨어지자, 타고 간 마법의 말은 죽어버리고 자신도 순식간에 눈먼 노인이 되어버렸다. 그가 다스리던 마법의 왕국은 이제는 꿈에서나 볼 수 있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댓글에서 계속)

//// 앵그르 <오시안의 꿈> -19세기 경 제작, 신고전주의 //// 북구 전설 속의 영웅 오시안의 노래를 주제로 한 이 그림은 나폴레옹의 침실 천장화로서 주문제작되었다. 정의로운 용사 핀갈의 아들인 오시안은 결혼을 하면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하는 돼지처럼 못생긴 추녀와 결혼했다. 그녀는 정말로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고, 믿음과 용기에 대한 대가로 그는 젊음의 나라인 티르 나 노그를 300년 동안 다스린다. 어느 날 고향에 가보고 싶던 그는 절대로 땅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아내의 경고를 듣고 길을 떠난다. 하지만 그가 말에서 미끄러져 떨어지자, 타고 간 마법의 말은 죽어버리고 자신도 순식간에 눈먼 노인이 되어버렸다. 그가 다스리던 마법의 왕국은 이제는 꿈에서나 볼 수 있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댓글에서 계속)

//// 파블로 피카소 <꿈> -1932년 제작 //// 피카소가 22살의 프랑스 여인 마리 테레즈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낸 작품이다. 당시 50세였던 피카소는 기혼 상태였지만 작품에는 그가 마리 테레즈에게 느꼈던 성적 매력이 뚝뚝 묻어나있다. 실제로 그녀는 2년뒤에 피카소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 있어서 한 어린 여인의 꿈꾸는 모습, 잠든 모습이 피카소에게 뮤즈가 된 셈이다. 꿈은 그 자체로도 모티브가 되기도 하지만 이처럼 꿈꾸는 사람 자체가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아마 사람이 잠들어 꿈을 꾸고 있을 때 가장 무방비하면서도 순수한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댓글에서 계속)

//// 파블로 피카소 <꿈> -1932년 제작 //// 피카소가 22살의 프랑스 여인 마리 테레즈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낸 작품이다. 당시 50세였던 피카소는 기혼 상태였지만 작품에는 그가 마리 테레즈에게 느꼈던 성적 매력이 뚝뚝 묻어나있다. 실제로 그녀는 2년뒤에 피카소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 있어서 한 어린 여인의 꿈꾸는 모습, 잠든 모습이 피카소에게 뮤즈가 된 셈이다. 꿈은 그 자체로도 모티브가 되기도 하지만 이처럼 꿈꾸는 사람 자체가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아마 사람이 잠들어 꿈을 꾸고 있을 때 가장 무방비하면서도 순수한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댓글에서 계속)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밤의 풍경: 걸인들의 꿈> - 18세기 경 제작, 로코코 //// 제목 그대로 걸인들이 잠을 자며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걸인들의 남루한 옷차림새와 달리 전체적인 분위기나 그들의 인상 등은 상당히 평화롭고 훈훈해보인다. 좋은 꿈을 꾸고 있나보다. 꿈은 종종 현실과는 다른 이상적 모습을 담아낸다. 그렇기에 꿈은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현실의 또렷한 자각일 수도 있다. 아침에 깨어난 걸인들에게는 간밤에 좋은 꿈이 서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좋은 꿈을 갈망한다. 희망의 표현이기 때문일 것이다. 화가가 잠든 걸인들의 표정을 평화롭게 그린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희망과 따스함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꿈은 우리에게 때때로 그런 존재이다.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밤의 풍경: 걸인들의 꿈> - 18세기 경 제작, 로코코 //// 제목 그대로 걸인들이 잠을 자며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걸인들의 남루한 옷차림새와 달리 전체적인 분위기나 그들의 인상 등은 상당히 평화롭고 훈훈해보인다. 좋은 꿈을 꾸고 있나보다. 꿈은 종종 현실과는 다른 이상적 모습을 담아낸다. 그렇기에 꿈은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현실의 또렷한 자각일 수도 있다. 아침에 깨어난 걸인들에게는 간밤에 좋은 꿈이 서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좋은 꿈을 갈망한다. 희망의 표현이기 때문일 것이다. 화가가 잠든 걸인들의 표정을 평화롭게 그린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희망과 따스함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꿈은 우리에게 때때로 그런 존재이다.

//// 앙리 루소 <꿈> - 1910년 제작 //// 앙리 루소가 약 25점에 걸쳐 남긴 정글에 대한 작품 중 하나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프랑스를 떠나본 적이 없고 박람회나 잡지 등을 통해 이국의 식물, 풍경 등에 대해 접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온실에 서서 이국 땅에서 건너온 이상한 식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꿈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화면 좌측에 쇼파 위에 누워있는 여인의 이름은 '야드비가'로서 루소는 이 그림 옆에 '야드비가'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를 붙여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를 읽어보면 사실 이 작품은 야드비가의 꿈과 현실이 공존하여 결합되어 있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파리의 한 쇼파에 누워있으면서 야자수와 금빛 날개의 새, 코끼리 등이 있는 정글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단지 야드비가의 꿈이 아니라 루소의 꿈이 아닐까 싶다. 파리에 있으면서도 이국의 정글을 늘 떠올렸던 그의 꿈…

//// 앙리 루소 <꿈> - 1910년 제작 //// 앙리 루소가 약 25점에 걸쳐 남긴 정글에 대한 작품 중 하나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프랑스를 떠나본 적이 없고 박람회나 잡지 등을 통해 이국의 식물, 풍경 등에 대해 접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온실에 서서 이국 땅에서 건너온 이상한 식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꿈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화면 좌측에 쇼파 위에 누워있는 여인의 이름은 '야드비가'로서 루소는 이 그림 옆에 '야드비가'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를 붙여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를 읽어보면 사실 이 작품은 야드비가의 꿈과 현실이 공존하여 결합되어 있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파리의 한 쇼파에 누워있으면서 야자수와 금빛 날개의 새, 코끼리 등이 있는 정글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단지 야드비가의 꿈이 아니라 루소의 꿈이 아닐까 싶다. 파리에 있으면서도 이국의 정글을 늘 떠올렸던 그의 꿈…

//// 폴 세잔 <시인의 꿈> - 1858,1860년경, 후기인상주의 //// <야곱의 꿈>에서와 마찬가지로 천사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사과' 로 유명한 폴 세잔의 작품이다. <야곱의 꿈>에서는 천사가 직접 그의 꿈에 등장해 그에게 축복을 내리는 반면, 이 작품에서는 천사가 시인에게 있어서 일종의 '뮤즈'의 역할을 하고있다. 잠든 시인 (아마도 시를 고민하다가 잠든) 에게 키스를 함으로써 그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주고 있는 듯 하다. 다시 말해 꿈은 영감인 것이다. 꿈이라는 무한한 상상력과 창조력의 에너지를 천사를 통해 불어넣어지고 있는듯한 표현이 제법 신선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인은 간밤에 꾼 꿈을 떠올리며 시를 써 내려갈 것이다.

//// 폴 세잔 <시인의 꿈> - 1858,1860년경, 후기인상주의 //// <야곱의 꿈>에서와 마찬가지로 천사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사과' 로 유명한 폴 세잔의 작품이다. <야곱의 꿈>에서는 천사가 직접 그의 꿈에 등장해 그에게 축복을 내리는 반면, 이 작품에서는 천사가 시인에게 있어서 일종의 '뮤즈'의 역할을 하고있다. 잠든 시인 (아마도 시를 고민하다가 잠든) 에게 키스를 함으로써 그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주고 있는 듯 하다. 다시 말해 꿈은 영감인 것이다. 꿈이라는 무한한 상상력과 창조력의 에너지를 천사를 통해 불어넣어지고 있는듯한 표현이 제법 신선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인은 간밤에 꾼 꿈을 떠올리며 시를 써 내려갈 것이다.

//// 엠마누엘 필립스 폭스 <꿈> -1903년 제작 //// 침대에 기대어 살짝 잠이 든 여인을 그려낸 작품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낮잠 자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녀의 주변 풍경 또한 지극히 일상적이다. 다만 이 작품의 제목이 <낮잠>이 아니라 <꿈>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화가가 그녀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린 듯 싶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그녀의 꿈을 훔쳐볼만한 부분은 없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그녀의 꿈을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나풀거리는 치마를 입고 나풀거리는 침대 위에서 잠이 든 그녀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남의 꿈을 상상해보는 것 또한 창조력의 한 부분일 것이다.

//// 엠마누엘 필립스 폭스 <꿈> -1903년 제작 //// 침대에 기대어 살짝 잠이 든 여인을 그려낸 작품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낮잠 자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녀의 주변 풍경 또한 지극히 일상적이다. 다만 이 작품의 제목이 <낮잠>이 아니라 <꿈>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화가가 그녀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린 듯 싶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그녀의 꿈을 훔쳐볼만한 부분은 없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그녀의 꿈을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나풀거리는 치마를 입고 나풀거리는 침대 위에서 잠이 든 그녀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남의 꿈을 상상해보는 것 또한 창조력의 한 부분일 것이다.

//// 바시치오 <형제들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 요셉> -17세기 경 제작 //// 성경에서 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요셉이다. 요셉은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로서 어릴적에 신기한 꿈을 자주 꾸어 형들로부터 '꿈쟁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이후 형들에 의해 이집트로 팔려가는 등 다양한 인생의 고난을 겪게 되지만 그가 꾸는 예언적 꿈을 통해 그 고난들을 극복하고 결국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는 인물이다. 요셉은 전형적으로 신의 꿈을 꾸는 인물이다. 그가 꾸는 꿈은 신이 보여주는 예언이자 살짝 훔쳐볼 수 있는 미래의 순간인 것이다. 신의 예언 혹은 미래의 일이 꿈을 통해 나타난다는 모티브가 흔하다는 것은 그만큼 꿈이 사람에게 강력한 체험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바시치오 <형제들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 요셉> -17세기 경 제작 //// 성경에서 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요셉이다. 요셉은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로서 어릴적에 신기한 꿈을 자주 꾸어 형들로부터 '꿈쟁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이후 형들에 의해 이집트로 팔려가는 등 다양한 인생의 고난을 겪게 되지만 그가 꾸는 예언적 꿈을 통해 그 고난들을 극복하고 결국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는 인물이다. 요셉은 전형적으로 신의 꿈을 꾸는 인물이다. 그가 꾸는 꿈은 신이 보여주는 예언이자 살짝 훔쳐볼 수 있는 미래의 순간인 것이다. 신의 예언 혹은 미래의 일이 꿈을 통해 나타난다는 모티브가 흔하다는 것은 그만큼 꿈이 사람에게 강력한 체험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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