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화가도 사람이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그림 속에 내 자신을 잘 그리지 않는 편이다. 왠지 나 자신을 그린다는 것이 쑥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을 표현해 놓은 작품을 보면, 그 당당함과 자신감이 부러워진다. 그러나 화가들이 자신감의 표출을 위해 자기 자신을 그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화가들은 자신이 염원하고 지향하는 것을 좀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또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자신을 그려넣었다. 화가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그리는 데에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자화상에서 화가들의 감정을 직접 느껴 보고 싶었다. 전시는 크게 "자신감을 표현하다", "기록을 남기다", "어둠속에서 외치다", "간절히 소망하다"의 네가지 테마를 가지고 있다. 화가들이 다양한 감정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그린다는 것을 배우며, 스스로에 대해서도 좀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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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남기다"    보티첼리, <세 동방박사의 경배>        <세 동방박사의 경배>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먼 동방에서 예루살렘까지 찾아온 세명의 동방박사를 그린 그림이다. 보티첼리는 이 작품 안에 자신을 후원하는 메디치가의 사람들을 모델로 등장시킨다. 오른쪽 끝에 있는 황색 옷의 사나이가 보티첼리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당시의 피렌체는 쾌락과 환락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다 못한 수도자, 사보나롤라는 축제의 풍습을 경배와 자비의 풍습으로 바꿔 보티첼리는 그를 몹시 흠모했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 사보나롤라는 외면당하고 결국 피렌체 한복판에서 화형을 당했다. 사보나롤라의 죽음 이후 보티첼리는 의욕을 잃고 마지막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이것은 현재 영국 국립미술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보티첼리가 서명을 남긴 유일한 그림이기도 하다. 그리고 보티첼리는 이렇게 적었다.

"기록으로 남기다" 보티첼리, <세 동방박사의 경배> <세 동방박사의 경배>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먼 동방에서 예루살렘까지 찾아온 세명의 동방박사를 그린 그림이다. 보티첼리는 이 작품 안에 자신을 후원하는 메디치가의 사람들을 모델로 등장시킨다. 오른쪽 끝에 있는 황색 옷의 사나이가 보티첼리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당시의 피렌체는 쾌락과 환락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다 못한 수도자, 사보나롤라는 축제의 풍습을 경배와 자비의 풍습으로 바꿔 보티첼리는 그를 몹시 흠모했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 사보나롤라는 외면당하고 결국 피렌체 한복판에서 화형을 당했다. 사보나롤라의 죽음 이후 보티첼리는 의욕을 잃고 마지막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이것은 현재 영국 국립미술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보티첼리가 서명을 남긴 유일한 그림이기도 하다. 그리고 보티첼리는 이렇게 적었다.

"간절히 소망하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몰랭루즈에서>    로트렉은 귀족 신분이었지만, 허약한 몸과 작은 키 때문에 항상 고민이 많았던 화가였다. 그에게 그림은 이런 시련들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로트렉은 자화상을 많이 그리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 그림에는 살짝 자신을 그려넣었다. 작품 위쪽에 그려진 키다리 옆에서 걸어가고 있는, 모자를 쓴 작달막한 남자가 로트렉이다. 로트렉인지 확실히 알 수도, 구분할 수도 없게 자신을 평범하게 묘사했다.  아마도 로트렉은 이 그림에 드러난 것과 같이 평범한 일상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에 자신을 그려넣은 것이 아닐까? 그림 속에서 위안을 찾고, 끝까지 그림에 대한 희망과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던 작은 거인 로트렉의 그림 속 모습이 피곤하고 지쳐 보이는 것도 같다.

"간절히 소망하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몰랭루즈에서> 로트렉은 귀족 신분이었지만, 허약한 몸과 작은 키 때문에 항상 고민이 많았던 화가였다. 그에게 그림은 이런 시련들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로트렉은 자화상을 많이 그리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 그림에는 살짝 자신을 그려넣었다. 작품 위쪽에 그려진 키다리 옆에서 걸어가고 있는, 모자를 쓴 작달막한 남자가 로트렉이다. 로트렉인지 확실히 알 수도, 구분할 수도 없게 자신을 평범하게 묘사했다. 아마도 로트렉은 이 그림에 드러난 것과 같이 평범한 일상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에 자신을 그려넣은 것이 아닐까? 그림 속에서 위안을 찾고, 끝까지 그림에 대한 희망과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던 작은 거인 로트렉의 그림 속 모습이 피곤하고 지쳐 보이는 것도 같다.

"어둠속에서 외치다"  프리다 칼로, <두 명의 프리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유명 여성 화가로, 역시 유명한 화가였던 리베라의 아내였지만, 리베라의 여성편력과 병으로 인해 고통스런 나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이 그림에서는 리베라의 외도에 대한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두 여성 모두 칼로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오른쪽은 리베라에게 사랑받던 시절의 모습이고, 왼쪽 여성은 리베라의 배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칼로의 모습이다. 오른쪽 여성은 미소를 띠고 안정된 모습을 하고 이쓴 반면, 왼쪽 여성의 손에는 피가 뚝뚝 흐르는 가위를 들고 있어, 그녀가 심장을 도려냈음을 보여 준다. 두 여성의 뒤에 그려진 먹구름처럼 보이는 배경은 그녀의 절망스러운 심리를 드러내 준다.

"어둠속에서 외치다" 프리다 칼로, <두 명의 프리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유명 여성 화가로, 역시 유명한 화가였던 리베라의 아내였지만, 리베라의 여성편력과 병으로 인해 고통스런 나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이 그림에서는 리베라의 외도에 대한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두 여성 모두 칼로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오른쪽은 리베라에게 사랑받던 시절의 모습이고, 왼쪽 여성은 리베라의 배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칼로의 모습이다. 오른쪽 여성은 미소를 띠고 안정된 모습을 하고 이쓴 반면, 왼쪽 여성의 손에는 피가 뚝뚝 흐르는 가위를 들고 있어, 그녀가 심장을 도려냈음을 보여 준다. 두 여성의 뒤에 그려진 먹구름처럼 보이는 배경은 그녀의 절망스러운 심리를 드러내 준다.

"자신감을 표현하다"  앤디 워홀, <초기 자화상>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은 그의 자신감 넘치는 자화상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명성에 비해 못생기고 볼품없는 외모 때문에, 워홀은 자신의 얼굴을 더 잘나 보이게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림 속의 워홀은 당당히 턱을 들고 있다. 심지어 그의 시선은 관객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앙다문 그의 입술에서 자부심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가 자신의 외모에 대해 볼품없다고 느꼈을지언정, 그의 표정에서 우리는 그런 느낌을 찾아볼 수 없다. ‘팝의 교황’다운 모습이다.

"자신감을 표현하다" 앤디 워홀, <초기 자화상>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은 그의 자신감 넘치는 자화상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명성에 비해 못생기고 볼품없는 외모 때문에, 워홀은 자신의 얼굴을 더 잘나 보이게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림 속의 워홀은 당당히 턱을 들고 있다. 심지어 그의 시선은 관객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앙다문 그의 입술에서 자부심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가 자신의 외모에 대해 볼품없다고 느꼈을지언정, 그의 표정에서 우리는 그런 느낌을 찾아볼 수 없다. ‘팝의 교황’다운 모습이다.

"기록으로 남기다"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이 그림은 그림 속 사물들이 갖는 다양한 상징적 의미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그림 속에서 또 그림을 찾아내는 재미를 가져다준다. 그림속 거울에는 아르놀피니 부부 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이 담겨 있다. 거울 속에 비치는 두 부부의 뒷모습 사이로 보이는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바로 화가 얀 반 에이크 자신이다. 그는 벽에도 ‘이곳에 얀 반 에이크가 있었다’는 서명을 숨겨 놓아 그 자신의 존재를 기록한다. 즉, 이 그림은 부부의 결혼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린 그림이 된다. 결혼 증명서이지만 사물 하나하나의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신경쓴 얀 반 에이크의 정성이 돋보인다. 그가 이 부부와 어떠한 관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처럼 잘 그려진 결혼 증명서를 받은 이 부부는 오래오래 행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기록으로 남기다"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이 그림은 그림 속 사물들이 갖는 다양한 상징적 의미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그림 속에서 또 그림을 찾아내는 재미를 가져다준다. 그림속 거울에는 아르놀피니 부부 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이 담겨 있다. 거울 속에 비치는 두 부부의 뒷모습 사이로 보이는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바로 화가 얀 반 에이크 자신이다. 그는 벽에도 ‘이곳에 얀 반 에이크가 있었다’는 서명을 숨겨 놓아 그 자신의 존재를 기록한다. 즉, 이 그림은 부부의 결혼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린 그림이 된다. 결혼 증명서이지만 사물 하나하나의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신경쓴 얀 반 에이크의 정성이 돋보인다. 그가 이 부부와 어떠한 관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처럼 잘 그려진 결혼 증명서를 받은 이 부부는 오래오래 행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간절히 소망하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이 작품 속에는 아테네 ‘학당’ 답게 당대 유명했던 학자들이 여러 명 나와 있어, 화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등의 유명한 학자들 사이에 검은 모자를 쓰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라파엘로도 그려져 있다. 그는 가장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학자들 사이에 끼어 마치 한 명의 학자같은 느낌을 주는 라파엘로. 자연스럽게 그림에 융화되어 유명한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그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무슨 일 있냐는 듯 무표정한 그의 표정 덕에 학자들과 더욱 잘 어우러져 보이는 듯하다.

"간절히 소망하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이 작품 속에는 아테네 ‘학당’ 답게 당대 유명했던 학자들이 여러 명 나와 있어, 화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등의 유명한 학자들 사이에 검은 모자를 쓰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라파엘로도 그려져 있다. 그는 가장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학자들 사이에 끼어 마치 한 명의 학자같은 느낌을 주는 라파엘로. 자연스럽게 그림에 융화되어 유명한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그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무슨 일 있냐는 듯 무표정한 그의 표정 덕에 학자들과 더욱 잘 어우러져 보이는 듯하다.

"기록을 남기다"  베로네세, <카나의 혼인잔치>    그림 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앙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보여주고 있지만, 호화로운 잔치 분위기 속에서 이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종교적인 장면이 잔치 속에 묻혀 버리는 것이다.  이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잔치에는 유명인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 군중 속에는 베로네세도 끼어 있다. 그는 자신이 여기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이 그림에 자신을 그려넣었다. 그러나 화가의 지위가 상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은연중에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기록을 남기다" 베로네세, <카나의 혼인잔치> 그림 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앙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보여주고 있지만, 호화로운 잔치 분위기 속에서 이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종교적인 장면이 잔치 속에 묻혀 버리는 것이다. 이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잔치에는 유명인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 군중 속에는 베로네세도 끼어 있다. 그는 자신이 여기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이 그림에 자신을 그려넣었다. 그러나 화가의 지위가 상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은연중에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둠속에서 외치다"  피카소, <망토입은 자화상>    지금은 모두가 알 만큼 유명한 화가, 피카소의 초기 작품이다. 이 당시 피카소는 무명이었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화가였다. 창백한 얼굴색과 볼이 푹 패인 모습이 생활이 넉넉치 않음을 드러낸다.   피곤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과 검정색 계열의 의상이 화가를 더욱 우울해 보이도록 만든다. 눈빛이 아직 살아 있기는 하지만, 생기가 돌지는 않는다. 그는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될 거라고 예상했을까? 자신의 앞에 펼쳐질 찬란한 미래를 아직 알지 못하는 무명 피카소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어둠속에서 외치다" 피카소, <망토입은 자화상> 지금은 모두가 알 만큼 유명한 화가, 피카소의 초기 작품이다. 이 당시 피카소는 무명이었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화가였다. 창백한 얼굴색과 볼이 푹 패인 모습이 생활이 넉넉치 않음을 드러낸다. 피곤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과 검정색 계열의 의상이 화가를 더욱 우울해 보이도록 만든다. 눈빛이 아직 살아 있기는 하지만, 생기가 돌지는 않는다. 그는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될 거라고 예상했을까? 자신의 앞에 펼쳐질 찬란한 미래를 아직 알지 못하는 무명 피카소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기록으로 남기다"  모네, <자화상>    고흐와 다르게 자화상을 거의 남기지 않았던 모네가 말년에 남긴 이 자화상은 그 당시의 심정이 담겨 있는 듯하다. 이 그림에는 화가로서 자부심이 담겨있지 않으며, 서서히 늙어간 한 노인이 조용하게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다. 인생을 오래산 사람으로서 보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어다보고 그것을 표현한 것 같으며, 또한 자신의 전부였던 시력을 잃은 상실감이 묻어나오는 듯하다. 그러나 길게 자란 그의 수염은 여전히 그 특유의 원색 표현으로 흰색이 아닌 노란색으로 문지르듯이 표현하였다. 또한 그의 후기 작품에서 많이 보이는 넓게 쓸어내리는 붓놀림을 구사하였다. 모네는 끝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으며, 최선을 다해 그의 일생의 과제였던 색채와 씨름하였다. 그가 기록을 의도하면서 그린 것은 아니지만, 그림에 대한 모네의 열정을 기록하기에 좋은 그림인 것 같다.

"기록으로 남기다" 모네, <자화상> 고흐와 다르게 자화상을 거의 남기지 않았던 모네가 말년에 남긴 이 자화상은 그 당시의 심정이 담겨 있는 듯하다. 이 그림에는 화가로서 자부심이 담겨있지 않으며, 서서히 늙어간 한 노인이 조용하게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다. 인생을 오래산 사람으로서 보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어다보고 그것을 표현한 것 같으며, 또한 자신의 전부였던 시력을 잃은 상실감이 묻어나오는 듯하다. 그러나 길게 자란 그의 수염은 여전히 그 특유의 원색 표현으로 흰색이 아닌 노란색으로 문지르듯이 표현하였다. 또한 그의 후기 작품에서 많이 보이는 넓게 쓸어내리는 붓놀림을 구사하였다. 모네는 끝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으며, 최선을 다해 그의 일생의 과제였던 색채와 씨름하였다. 그가 기록을 의도하면서 그린 것은 아니지만, 그림에 대한 모네의 열정을 기록하기에 좋은 그림인 것 같다.

"간절히 소망하다"  카라바조, <병든 바쿠스>    <병든 바쿠스>는 카라바조가 자신의 뒤를 밀어 줄 배경이나 돈이 없던 어려운 시절에 그린 작품이다. 그는 싸구려 그림을 그리는 화가 밑에서 제단화나 정물화를 그려주는 것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이 때 이 화가가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아 오랫동안 병을 앓았다고 한다.   그림 속 바쿠스의 모습을 하고 있는 카라바조는 제목처럼 병색이 완연한 모습이다. 혈색이 창백하고 입술은 허옇게 떴으며, 신의 탁자인데도 과일 몇 개가 놓여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초롱초롱한 눈에서, 우리는 막 화가의 길에 들어선 젊은이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엿볼 수 있다. 포도주의 신 바쿠스의 모습에 자신의 얼굴을 그렸다는 것에서, 앞으로 찾아올 풍요로움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가 엿보이는 듯 하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당당히 바쿠스 신이라고 명할 수 있었던 그의 용기가 부럽다.

"간절히 소망하다" 카라바조, <병든 바쿠스> <병든 바쿠스>는 카라바조가 자신의 뒤를 밀어 줄 배경이나 돈이 없던 어려운 시절에 그린 작품이다. 그는 싸구려 그림을 그리는 화가 밑에서 제단화나 정물화를 그려주는 것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이 때 이 화가가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아 오랫동안 병을 앓았다고 한다. 그림 속 바쿠스의 모습을 하고 있는 카라바조는 제목처럼 병색이 완연한 모습이다. 혈색이 창백하고 입술은 허옇게 떴으며, 신의 탁자인데도 과일 몇 개가 놓여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초롱초롱한 눈에서, 우리는 막 화가의 길에 들어선 젊은이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엿볼 수 있다. 포도주의 신 바쿠스의 모습에 자신의 얼굴을 그렸다는 것에서, 앞으로 찾아올 풍요로움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가 엿보이는 듯 하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당당히 바쿠스 신이라고 명할 수 있었던 그의 용기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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