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사 2.시대 - 18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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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Jacques-Louis  Portrait of Pierre.1795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제정시대가 되면서 부르주아 계급의 가치와 태도 등 문화적 코드들이 만들어 지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 상징적 기호는 외양의 치장이라는 옷차림을 통해 가시적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었다. 프랑스대혁명을 치룬 프랑스 사회에서는 당시 산업화로 인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 계급이 상승하고 있었고, 그들은 구체제 하에서의 귀족들과는 다른 새로운 구별을 원했고, 이 역시 외양이 차별화를 통해서 이루어 졌다. 18세기 귀족의 화려한 색상의 의복과는 달리 부르주아 남성들은 검은색 정장을 통해 자기 통제의 관념을 나타냈고, 여기에서 의복의 도덕성을 추구하였다. 이후 19세기가 진행되는 동안 부르주아 의복이 보편화되자 넥타이를 통해서 자신을 다른 계급과 구별짓기위한 노력을 하기도 한다.

DAVID,Jacques-Louis Portrait of Pierre.1795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제정시대가 되면서 부르주아 계급의 가치와 태도 등 문화적 코드들이 만들어 지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 상징적 기호는 외양의 치장이라는 옷차림을 통해 가시적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었다. 프랑스대혁명을 치룬 프랑스 사회에서는 당시 산업화로 인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 계급이 상승하고 있었고, 그들은 구체제 하에서의 귀족들과는 다른 새로운 구별을 원했고, 이 역시 외양이 차별화를 통해서 이루어 졌다. 18세기 귀족의 화려한 색상의 의복과는 달리 부르주아 남성들은 검은색 정장을 통해 자기 통제의 관념을 나타냈고, 여기에서 의복의 도덕성을 추구하였다. 이후 19세기가 진행되는 동안 부르주아 의복이 보편화되자 넥타이를 통해서 자신을 다른 계급과 구별짓기위한 노력을 하기도 한다.

라파엘로- 성 캐서린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캐서린은 3세기 인물로서 18살의나이로 로마 황제 막시무스에게 찾아가 철학자들과 논쟁을 하여 승리한 당당한 여성의 표본이며, 카톨릭 계의 성인 중 한 사람이다. 캐서린의 뛰어난 화술에 감동한 황후와 장군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해 버리자 분노한 막시무스 황제는 개종한 고위 관료들과 함께 홍후와 캐서린까지 처형해 버렸다. 캐서린은 쇠못이 박힌 나무 바퀴로 고문을 당한 뒤 교수형을 당했는데 그림속에서 캐서린이 기대고 있는 나무 바퀴가 바로 고난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그림속에서 역시 라파엘로의 다빈치에 대한 동경을 엿볼 수 있는데 , 그것은 그림속 캐서린을 다빈치의 '레다와 백조'의 레다와 같은 자세로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라파엘로- 성 캐서린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캐서린은 3세기 인물로서 18살의나이로 로마 황제 막시무스에게 찾아가 철학자들과 논쟁을 하여 승리한 당당한 여성의 표본이며, 카톨릭 계의 성인 중 한 사람이다. 캐서린의 뛰어난 화술에 감동한 황후와 장군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해 버리자 분노한 막시무스 황제는 개종한 고위 관료들과 함께 홍후와 캐서린까지 처형해 버렸다. 캐서린은 쇠못이 박힌 나무 바퀴로 고문을 당한 뒤 교수형을 당했는데 그림속에서 캐서린이 기대고 있는 나무 바퀴가 바로 고난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그림속에서 역시 라파엘로의 다빈치에 대한 동경을 엿볼 수 있는데 , 그것은 그림속 캐서린을 다빈치의 '레다와 백조'의 레다와 같은 자세로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GAINSOROUGH,Thomas  Mr and Mrs William Hallett.1785  18세기 유럽의 모든 사회계층의 남성들은 코트를 입었다. 루이14세이후 스타일은 크게 변하지는 않았고, 상의와 조끼자락을 방수포 혹은 뻣뻣한 천이나 종이로하여 여성복의 스커트가 허리에서 튀어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옷자락이 엉덩이에서 튀어나오게 했다. 앞에 단추가 많이 달려있는 것이 특징이며, 벌려입어 아래 셔츠의 프릴장식, 소매부분 커프스장식, 화려한 웨이스트 코트가 보이도록 하는 것 역시 특징이다. 영국에서는 좀 더 캐주얼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이 유행했다. 프랑스의 귀족들이 호화로운 궁정생활을 했다면, 영국귀족들은 자신들의 영지에서 느긋하게 전원생활을  즐겼다. 당시 영국여성들이 드레스는 파니에 없이 엉덩이 부분에 패드된 버슬만을 입고 착용하는 로브로서 몸에 꼭 끼는 바디스로 가슴을 강조했다. 그리고 스카프를 목 주변에 덮었고, 18세기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모자가 유행하게 되었다.

GAINSOROUGH,Thomas Mr and Mrs William Hallett.1785 18세기 유럽의 모든 사회계층의 남성들은 코트를 입었다. 루이14세이후 스타일은 크게 변하지는 않았고, 상의와 조끼자락을 방수포 혹은 뻣뻣한 천이나 종이로하여 여성복의 스커트가 허리에서 튀어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옷자락이 엉덩이에서 튀어나오게 했다. 앞에 단추가 많이 달려있는 것이 특징이며, 벌려입어 아래 셔츠의 프릴장식, 소매부분 커프스장식, 화려한 웨이스트 코트가 보이도록 하는 것 역시 특징이다. 영국에서는 좀 더 캐주얼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이 유행했다. 프랑스의 귀족들이 호화로운 궁정생활을 했다면, 영국귀족들은 자신들의 영지에서 느긋하게 전원생활을 즐겼다. 당시 영국여성들이 드레스는 파니에 없이 엉덩이 부분에 패드된 버슬만을 입고 착용하는 로브로서 몸에 꼭 끼는 바디스로 가슴을 강조했다. 그리고 스카프를 목 주변에 덮었고, 18세기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모자가 유행하게 되었다.

-더비의 조셉 라이트, 리차드 아크라이트경의 초상, 1789~1790  -18세기 후반, 산업혁명과 함께 초상화 시장에는 귀족 못지 않은 유력한 고객층이 새롭게 등장  -리차드 아크라이트경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류의 초상화들을 조사해 볼 것.

-더비의 조셉 라이트, 리차드 아크라이트경의 초상, 1789~1790 -18세기 후반, 산업혁명과 함께 초상화 시장에는 귀족 못지 않은 유력한 고객층이 새롭게 등장 -리차드 아크라이트경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류의 초상화들을 조사해 볼 것.

mme de Pompadour 1755, Quentin

mme de Pompadour 1755, Quentin

루이14세  18세기 귀족에게 빨강색은 권위와 호화로움을 상징한다. 그림 속의 루이14세는 빨강 굽의 구두를 신고 있다.온통 흰색의 옷에 딱 하나 들어가 있는 빨간색은 오직 귀족만이 신을 수 있는 색의 굽이었다.

루이14세 18세기 귀족에게 빨강색은 권위와 호화로움을 상징한다. 그림 속의 루이14세는 빨강 굽의 구두를 신고 있다.온통 흰색의 옷에 딱 하나 들어가 있는 빨간색은 오직 귀족만이 신을 수 있는 색의 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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