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portrait

28 6 팔로워
렘브란트, <베레모와 옷깃을 세운 자화상>, 1659  부와 명예를 누렸던 렘브란트는 점점 곤궁해지다가 1656년 파산을 하게 되었다. 집과 작품, 수집품들을 처분해야 했고, 자기 그림을 마음대로 팔 수도 없었던 경제적 상황에서 가족과 명예마저 잃어갔다.   말년의 10여 년 동안 렘브란트는 정면을 향하고 있는 자화상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렘브란트는 늙은 자신의 모습을 사실적이고 덤덤하게 그렸으며 이 시기의 자화상들은 좋은 시기의 자화상들보다 더 어두운 배경과 표정을 하고 있다. 운명에 대한 체념, 냉소마저 엿보인다. 렘브란트의 얼굴은 빛을 통해 또렷하지만 그 아래 부분은 배경에 묻혀 그 경계가 흐릿하다.

렘브란트, <베레모와 옷깃을 세운 자화상>, 1659 부와 명예를 누렸던 렘브란트는 점점 곤궁해지다가 1656년 파산을 하게 되었다. 집과 작품, 수집품들을 처분해야 했고, 자기 그림을 마음대로 팔 수도 없었던 경제적 상황에서 가족과 명예마저 잃어갔다. 말년의 10여 년 동안 렘브란트는 정면을 향하고 있는 자화상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렘브란트는 늙은 자신의 모습을 사실적이고 덤덤하게 그렸으며 이 시기의 자화상들은 좋은 시기의 자화상들보다 더 어두운 배경과 표정을 하고 있다. 운명에 대한 체념, 냉소마저 엿보인다. 렘브란트의 얼굴은 빛을 통해 또렷하지만 그 아래 부분은 배경에 묻혀 그 경계가 흐릿하다.

피카소, <자화상>, 1972  1910~14는 분해적 입체파의 시대, 그 이후 종합적 입체파의 시대가 되었다. 1924년경부터는 사실주의와 입체파의 혼합된 작품을 1924년 《조롱》을 발표, 당시 대두되기 시작한 초현실주의의 요소를 받아들여 입체파와 초현실주의의 절충 양식의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는 말년까지 자화상을 그렸으며 점점 단순화 된 모습을 보여준다. 개구진 듯 해학적인 모습마저 보이는 자화상에서는 세상사를 초탈한 모습마저 느껴진다.

피카소, <자화상>, 1972 1910~14는 분해적 입체파의 시대, 그 이후 종합적 입체파의 시대가 되었다. 1924년경부터는 사실주의와 입체파의 혼합된 작품을 1924년 《조롱》을 발표, 당시 대두되기 시작한 초현실주의의 요소를 받아들여 입체파와 초현실주의의 절충 양식의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는 말년까지 자화상을 그렸으며 점점 단순화 된 모습을 보여준다. 개구진 듯 해학적인 모습마저 보이는 자화상에서는 세상사를 초탈한 모습마저 느껴진다.

프리다 칼로, <두 명의 프리다>, 1939  <두 명의 프리다>에서 이중 자화상을 제작하였고, 심장을 살 밖으로 드러내었다. 오른쪽은 토착적인 테후아나 모습을 한 모습으로 리베라의 사랑을 받았던 자신이고 왼쪽은 빅토리아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이 경멸했던 모습의 자신이다.    어두운 표정에 심장이 뜯겨 피를 흘리고 있는 왼쪽의 프리다와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듯한 오른쪽의 프리다가 대비되며 어두운 배경이 현재 프리다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프리다 칼로, <두 명의 프리다>, 1939 <두 명의 프리다>에서 이중 자화상을 제작하였고, 심장을 살 밖으로 드러내었다. 오른쪽은 토착적인 테후아나 모습을 한 모습으로 리베라의 사랑을 받았던 자신이고 왼쪽은 빅토리아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이 경멸했던 모습의 자신이다. 어두운 표정에 심장이 뜯겨 피를 흘리고 있는 왼쪽의 프리다와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듯한 오른쪽의 프리다가 대비되며 어두운 배경이 현재 프리다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피카소의 여러 자화상들에서는 청색시대에서부터 입체파까지의 흐름이 잘 나타나있다.     피카소는 1901년에 그의 절친한 친구 까를로스 카사헤마스의 자살로 인해 충격 받은 그는 그 이후로 청색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친구의 죽음과 더불어 가난, 슬픔, 고독이 그의 그림에 나타난다. 푸른색이 주는 서늘하고 창백한 이미지와 덥수룩한 수염과 더불어 수척하고 야위어 보이는 얼굴이 쾡하고 우울한 피카소의 모습을 보여준다.   같은 1901년에 그린 그림이지만 왼쪽 그림에서는 노란색, 주황색과 같은 따뜻한 색감이 보이지만 본격적인 청색시대 작품인 다른 두 그림은 배경부터 자신의 얼굴색, 옷까지 푸른빛이 도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피카소의 여러 자화상들에서는 청색시대에서부터 입체파까지의 흐름이 잘 나타나있다. 피카소는 1901년에 그의 절친한 친구 까를로스 카사헤마스의 자살로 인해 충격 받은 그는 그 이후로 청색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친구의 죽음과 더불어 가난, 슬픔, 고독이 그의 그림에 나타난다. 푸른색이 주는 서늘하고 창백한 이미지와 덥수룩한 수염과 더불어 수척하고 야위어 보이는 얼굴이 쾡하고 우울한 피카소의 모습을 보여준다. 같은 1901년에 그린 그림이지만 왼쪽 그림에서는 노란색, 주황색과 같은 따뜻한 색감이 보이지만 본격적인 청색시대 작품인 다른 두 그림은 배경부터 자신의 얼굴색, 옷까지 푸른빛이 도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프리다 칼로, <상처 입은 사슴>, 1946  가지가 모두 부러지고, 기둥조차 점점 썩어가는 듯한 나무들에 둘러싸여 여러 대의 화살을 맞아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사슴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사슴의 몸에 꽂힌 화살들은 꼭 그녀의 몸을 관통한 쇠파이프 같고 주저앉은 사슴의 몸은 일어나지 못하는 그녀 자신의 몸을 표현하였지만 <부서진 기둥>에서 고통을 눈물로 호소했던 것과는 다르게 의연한 표정으로 고통을 이겨내고 있다

프리다 칼로, <상처 입은 사슴>, 1946 가지가 모두 부러지고, 기둥조차 점점 썩어가는 듯한 나무들에 둘러싸여 여러 대의 화살을 맞아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사슴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사슴의 몸에 꽂힌 화살들은 꼭 그녀의 몸을 관통한 쇠파이프 같고 주저앉은 사슴의 몸은 일어나지 못하는 그녀 자신의 몸을 표현하였지만 <부서진 기둥>에서 고통을 눈물로 호소했던 것과는 다르게 의연한 표정으로 고통을 이겨내고 있다

피카소, <자화상>, 19711910~14는 분해적 입체파의 시대, 그 이후 종합적 입체파의 시대가 되었다. 1924년경부터는 사실주의와 입체파의 혼합된 작품을 1924년 《조롱》을 발표, 당시 대두되기 시작한 초현실주의의 요소를 받아들여 입체파와 초현실주의의 절충 양식의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는 말년까지 자화상을 그렸으며 점점 단순화 된 모습을 보여준다. 개구진 듯 해학적인 모습마저 보이는 자화상에서는 세상사를 초탈한 모습마저 느껴진다.

피카소, <자화상>, 19711910~14는 분해적 입체파의 시대, 그 이후 종합적 입체파의 시대가 되었다. 1924년경부터는 사실주의와 입체파의 혼합된 작품을 1924년 《조롱》을 발표, 당시 대두되기 시작한 초현실주의의 요소를 받아들여 입체파와 초현실주의의 절충 양식의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는 말년까지 자화상을 그렸으며 점점 단순화 된 모습을 보여준다. 개구진 듯 해학적인 모습마저 보이는 자화상에서는 세상사를 초탈한 모습마저 느껴진다.

피카소, <자화상>, 19071910~14는 분해적 입체파의 시대, 그 이후 종합적 입체파의 시대가 되었다. 1924년경부터는 사실주의와 입체파의 혼합된 작품을 1924년 《조롱》을 발표, 당시 대두되기 시작한 초현실주의의 요소를 받아들여 입체파와 초현실주의의 절충 양식의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는 말년까지 자화상을 그렸으며 점점 단순화 된 모습을 보여준다. 개구진 듯 해학적인 모습마저 보이는 자화상에서는 세상사를 초탈한 모습마저 느껴진다.

피카소, <자화상>, 19071910~14는 분해적 입체파의 시대, 그 이후 종합적 입체파의 시대가 되었다. 1924년경부터는 사실주의와 입체파의 혼합된 작품을 1924년 《조롱》을 발표, 당시 대두되기 시작한 초현실주의의 요소를 받아들여 입체파와 초현실주의의 절충 양식의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는 말년까지 자화상을 그렸으며 점점 단순화 된 모습을 보여준다. 개구진 듯 해학적인 모습마저 보이는 자화상에서는 세상사를 초탈한 모습마저 느껴진다.

피카소, <자화상>, 1902  피카소의 여러 자화상들에서는 청색시대에서부터 입체파까지의 흐름이 잘 나타나있다.     피카소는 1901년에 그의 절친한 친구 까를로스 카사헤마스의 자살로 인해 충격 받은 그는 그 이후로 청색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친구의 죽음과 더불어 가난, 슬픔, 고독이 그의 그림에 나타난다. 푸른색이 주는 서늘하고 창백한 이미지와 덥수룩한 수염과 더불어 수척하고 야위어 보이는 얼굴이 쾡하고 우울한 피카소의 모습을 보여준다.   같은 1901년에 그린 그림이지만 왼쪽 그림에서는 노란색, 주황색과 같은 따뜻한 색감이 보이지만 본격적인 청색시대 작품인 다른 두 그림은 배경부터 자신의 얼굴색, 옷까지 푸른빛이 도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피카소, <자화상>, 1902 피카소의 여러 자화상들에서는 청색시대에서부터 입체파까지의 흐름이 잘 나타나있다. 피카소는 1901년에 그의 절친한 친구 까를로스 카사헤마스의 자살로 인해 충격 받은 그는 그 이후로 청색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친구의 죽음과 더불어 가난, 슬픔, 고독이 그의 그림에 나타난다. 푸른색이 주는 서늘하고 창백한 이미지와 덥수룩한 수염과 더불어 수척하고 야위어 보이는 얼굴이 쾡하고 우울한 피카소의 모습을 보여준다. 같은 1901년에 그린 그림이지만 왼쪽 그림에서는 노란색, 주황색과 같은 따뜻한 색감이 보이지만 본격적인 청색시대 작품인 다른 두 그림은 배경부터 자신의 얼굴색, 옷까지 푸른빛이 도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갱, <후광이 있는 자화상>, 1889  고갱은 자화상에서 자신을 그리스도에 투영한 모습을 종종 보인다. 자신이 겪었던 고난과 역경을 그리스도에 투영하여 보여주는 듯 하는데, 1889년에 그린 <후광이 있는 자화상>에서는 후광, 뱀, 사과 등의 모티프를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 같기도 타락한 아담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빨강, 노랑, 파랑 등의 원색적인 색채가 눈에 띄며 마치 합성처럼 보이는 화가의 얼굴은 냉소 혹은 자부심이 보이는 것 같다.

고갱, <후광이 있는 자화상>, 1889 고갱은 자화상에서 자신을 그리스도에 투영한 모습을 종종 보인다. 자신이 겪었던 고난과 역경을 그리스도에 투영하여 보여주는 듯 하는데, 1889년에 그린 <후광이 있는 자화상>에서는 후광, 뱀, 사과 등의 모티프를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 같기도 타락한 아담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빨강, 노랑, 파랑 등의 원색적인 색채가 눈에 띄며 마치 합성처럼 보이는 화가의 얼굴은 냉소 혹은 자부심이 보이는 것 같다.

들라크루아, <녹색조끼를 입은 자화상>, 1837  휘몰아치는 듯 속도감 있으면서도 섬세한 붓터치와 갈색 배경과 녹색조끼 색의 대비가 그림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섬세한 이목구비와 지적인 표정, 세련된 차림새, 턱을 약간 치켜든 자세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자의식이 느껴지며 이런 자의식과 어둡고 불안정한 배경이 대조를 이룬다.

들라크루아, <녹색조끼를 입은 자화상>, 1837 휘몰아치는 듯 속도감 있으면서도 섬세한 붓터치와 갈색 배경과 녹색조끼 색의 대비가 그림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섬세한 이목구비와 지적인 표정, 세련된 차림새, 턱을 약간 치켜든 자세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자의식이 느껴지며 이런 자의식과 어둡고 불안정한 배경이 대조를 이룬다.

Pinterest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