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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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칼로 자화상 -프리다칼로 <001. 꽃을 이용한 장식> 프리다 칼로는 학창시절에 사고를 당하여, 많이 아팠고, 병실에 누워있어야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픈 상황에서도 예술활동을 하며 끊임없이 탐구하였다. 특히 자신의 얼굴을 그린 자화상을 많이 남겼는데, 꽃으로 장식한 머리와 진한 색상의 화장등을 통하여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아름다움을 나타낸준 이 그림이 참 인상적이었음을 느꼈다.

프리다칼로 자화상 -프리다칼로 <001. 꽃을 이용한 장식> 프리다 칼로는 학창시절에 사고를 당하여, 많이 아팠고, 병실에 누워있어야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픈 상황에서도 예술활동을 하며 끊임없이 탐구하였다. 특히 자신의 얼굴을 그린 자화상을 많이 남겼는데, 꽃으로 장식한 머리와 진한 색상의 화장등을 통하여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아름다움을 나타낸준 이 그림이 참 인상적이었음을 느꼈다.

프리다칼로 ,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칼로 ,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 , 가시 목걸이와 벌새를 두른 자화상 , 1940 칼로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원숭이와 고양이는 그녀의 성적 본능의 강렬함과 야수성을 상징한다.

프리다 칼로 , 가시 목걸이와 벌새를 두른 자화상 , 1940 칼로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원숭이와 고양이는 그녀의 성적 본능의 강렬함과 야수성을 상징한다.

Las dos Fridas (1939) [두명의 프리다], 프리다칼로 프리다는 이혼 후 죽을정도로 괴로운 자신(왼편)을 표현한 그림

Las dos Fridas (1939) [두명의 프리다], 프리다칼로 프리다는 이혼 후 죽을정도로 괴로운 자신(왼편)을 표현한 그림

‘The Little Deer’ 프리다 칼로, 1946년. 사춘기시절에 교통사고를 겪은 뒤 평생을 이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프리다 칼로는 개인의 삶을 반영한 그림으로 1930년대 말부터 주목받기 시작해 맥시코를 대표하는 여성화가로 활동했다. 프리다 칼로는 마치 일기를 쓰듯이 자화상을 그렸다. 그녀는 자화상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소재가 나 자신이기 때문에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다친 사슴> 속의 그녀의 모습은 비록 여러 개의 화살 때문에 피를 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선은 매우 투명하고 강한 빛을 발하는데 이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자신의 고통이 오히려 예술로 승화되었음을 나타낸다. 이 작품은 아픔을 이겨내려는 의지와 희망을 표현한 프리다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이 대두되면서 그녀의 존재가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고, 1984년 멕시코정부는 그녀의 작품을 국보로 분류하였다.

‘The Little Deer’ 프리다 칼로, 1946년. 사춘기시절에 교통사고를 겪은 뒤 평생을 이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프리다 칼로는 개인의 삶을 반영한 그림으로 1930년대 말부터 주목받기 시작해 맥시코를 대표하는 여성화가로 활동했다. 프리다 칼로는 마치 일기를 쓰듯이 자화상을 그렸다. 그녀는 자화상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소재가 나 자신이기 때문에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다친 사슴> 속의 그녀의 모습은 비록 여러 개의 화살 때문에 피를 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선은 매우 투명하고 강한 빛을 발하는데 이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자신의 고통이 오히려 예술로 승화되었음을 나타낸다. 이 작품은 아픔을 이겨내려는 의지와 희망을 표현한 프리다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이 대두되면서 그녀의 존재가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고, 1984년 멕시코정부는 그녀의 작품을 국보로 분류하였다.

프리다 칼로, [우주와 지구, 나, 디에고 그리고 애견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 1949년

프리다 칼로, [우주와 지구, 나, 디에고 그리고 애견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 1949년

#4 Frida Kahlo < Tree of Hope (희망의 나무 굳세어라) > (1946) *이 그림은 프리다 칼로가 자신의 후원자인 에두아르도 모리요사파를 위해 그린 것이다. 프리다는 하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병실 침대에 등을 돌리고 누워있다. 벌거벗은 그녀의 등에 수술 자국이 선명하다. 그녀는 차마 얼굴을 보여줄 수 없을 만큼, 등을 돌리고 누울 만큼,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가혹한 운명에 굴복하지 않겠다면서 결의를 다진다. 또다른 프리다가 손에 쥐고 있는 깃발에는 '희망의 나무여, 굳세어라'라는 글이 적혀있다. 글은 당시 멕시코에서 유행한 가요의 가사를 빌려온 것이다. 프리다는 자신의 고통과 상처, 예술과 사랑, 희망과 절망을 자화상에 표현했다. 프리다는 자기암시를 주는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쓰면서 47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다.

#4 Frida Kahlo < Tree of Hope (희망의 나무 굳세어라) > (1946) *이 그림은 프리다 칼로가 자신의 후원자인 에두아르도 모리요사파를 위해 그린 것이다. 프리다는 하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병실 침대에 등을 돌리고 누워있다. 벌거벗은 그녀의 등에 수술 자국이 선명하다. 그녀는 차마 얼굴을 보여줄 수 없을 만큼, 등을 돌리고 누울 만큼,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가혹한 운명에 굴복하지 않겠다면서 결의를 다진다. 또다른 프리다가 손에 쥐고 있는 깃발에는 '희망의 나무여, 굳세어라'라는 글이 적혀있다. 글은 당시 멕시코에서 유행한 가요의 가사를 빌려온 것이다. 프리다는 자신의 고통과 상처, 예술과 사랑, 희망과 절망을 자화상에 표현했다. 프리다는 자기암시를 주는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쓰면서 47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다.

프리다 칼로 , 나의 탄생 , 1932 자신의 비극적 생애의 출발을 알리는 출생의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프리다 칼로 , 나의 탄생 , 1932 자신의 비극적 생애의 출발을 알리는 출생의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프리다 칼로와 페미니즘: <뿌리,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는 소아마비와 불임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하였고, 그녀의 작품은 멕시코의 국보로 높게 평가된다. 그녀의 미술의 특징은 멕시코 고유 미술의 특징으로 페미니즘 운동에 앞장섰다는 점이다. 그녀의 작품 뿌리에는 멕시코 여인과 자연 환경이 묘사되었고, 여인에게 뿌리가 나듯이 인간의 뿌리가 여자에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한편, 그녀의 그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인들에게는 얕은 수염이 그려진 점이 재밌는데, 이 그림 역시 그렇다.)

프리다 칼로와 페미니즘: <뿌리,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는 소아마비와 불임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하였고, 그녀의 작품은 멕시코의 국보로 높게 평가된다. 그녀의 미술의 특징은 멕시코 고유 미술의 특징으로 페미니즘 운동에 앞장섰다는 점이다. 그녀의 작품 뿌리에는 멕시코 여인과 자연 환경이 묘사되었고, 여인에게 뿌리가 나듯이 인간의 뿌리가 여자에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한편, 그녀의 그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인들에게는 얕은 수염이 그려진 점이 재밌는데, 이 그림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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